쿠타이시의 중국인 호텔은 아마도 공장을 리모델링한 것 같다. 방은 엄청 큰데 디자인이 엉성하다. 잠잘 자는 나야 상관없지만 무드 찾는 여성동지들은 기분이 다운될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오늘 이곳에 있는 갤라티수도원과 바그라티대성당, 프로메테우스 자연보존지를 보고 흑해연안도시인 바투미까지 가야한다. 그리고 바투미에서 클로라는 동네까지 갔다와야한다. 정말 살인적인 일정이다. 상큼한 아침공기를 가르며 버스가 달려간 곳은 갤라티수도원이다. 겔라티 수도원은 건축양식과 모자이크, 에나멜 세공과 금속세공, 벽화 등으로 인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수도원이었고 그 안에 설립된 아카데미는 중세 조지아의 교육과 문화, 과학의 중심지였다. 이 수도원은 ‘건설자’ 다비드 4세(King David, 1089~1125)와 타마르 여왕(Queen Tamar, 1184~1213) 시대, 조지아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성하던 시기에 건축되었다. 이 시기는 조지아의 황금기이다. 수도원의 건축은 1106년 다비드 왕에 의해 시작되어, 1130년 다비드왕의 계승자인 데메트레왕 때 완공되었다. 그 뒤 13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건물들이 증축되었지만 계속된 외침과 내전으로 인해 수도원 곳곳이 파괴되었는데, 무엇보다도 1510년 오스만 투르크 침략자의 방화에 의한 피해가 가장 컸다. 16세기 서조지아 카톨리코스(Katholikos)의 거처가 되면서 복구가 시작되어 17세기,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9세기 초에는 조지아가 러시아에 합병되면서 이곳도 주교구좌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 수도원에 들어가는 입구 문이 독특하다. 대문에 쪽문이 설치되어 있고 쪽문으로 드나들기 위한 작은 나무계단이 인상적이다. 돌타일로 포장된 입구를 지나자 눈앞에 웅장한 대성당이 등장한다. 그 규모만으로도 이곳이 중세 조지아인들의 신앙적 중심지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도원은 전체적으로 석벽으로 둘러쳐져있고 출입구는 동쪽으로 나있다. 구역 중앙에 마리아성당, 남쪽에 조지성당, 그 뒤족에 니콜라스성당과 대학건물, 서쪽에 3층석탑이 배치되어있다. 중앙에 자리잡은 마리아대성당은 그 규모만으로도 조지아의 번영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문이 세 개 달린 서쪽의 정문 출입구로 들어서면, 12세기에 애프스의 반원형 천장에 그려진 유명한 모자이크(황금색 배경을 뒤로 두 명의 대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예수의 채색화)가 눈길을 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공유언론사, 협력교회 및 기관 외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 kdtimes@hanmail.net) 운영이사장=정민량 목사ㅣ 발행인=오종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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